"무슨 일 있었어?"



 맥주캔을 바닥에 내려놓던 손이 순간 멈추었다. 누이는 슬쩍 웃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글쎄."



 쥰은 네 표정에 다 써 있는데, 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해가 지던 자국이 아직 하늘에 남아있었다. 희끄무레한 다홍빛이 쪽빛 아래에 머물러있다. 누이는 그 빛을 넘겨다보며 쥰 옆에 앉았다. 하루 종일 데워져 있던 베란다 바닥이 따뜻했다. 안주는 없어요, 누이는 그렇게 말하며 캔을 땄다. 맥주 거품이 올라왔다 사라지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렸다.



 "무슨 일…… 없어서 마시는 거예요."



 누이의 얼굴에도 노을자국 비슷한 웃음자국이 남아있다.



 "그럼 다행이지만."
 "흐흥."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가볍게 콧소리로 대답한다. 쥰은 술이 썩 내키지 않아서 몇 모금 마시다 다시 내려놓았다. 누이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마셨다. 말없이 금방 한 캔을 다 비우곤 쥰이 마시다 만 것까지 손을 댔다. 쥰이 말리지는 않지만 마뜩찮아하는 걸 알면서도. 빈 속에 안주도 없이 술을 들이부으니 취기가 오르는 게 빨랐다. 눈빛이 점점 멀어지고 웃음자국이 희미해진다. 하늘에 묻어 있던 다홍빛은 점점 누이의 양 볼로 옮겨왔다. 쥰은 딱히 시선 둘 곳이 없어 그것만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볼을 톡 찔렀다.



 "뭐야. 왜요."
 "우는 얼굴."
 "티나요?"
 "응, 술 마시니까 티난다."
 "마시지 말 걸 그랬네……."



 그래도 캔을 내려놓지는 않는다.



 "안 울어요."
 "그래."
 "이것만 마시고……."



 얼굴에 닿아오는 시선이 무거워서 누이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마른 세수를 하듯 거칠게 쓸어내렸다. 술냄새 섞인 제 숨이 코끝에 훅 끼쳤다. 아, 칭얼거리기 싫은데. 취하니까 자제가 안 된다. 괜히 추태부리게 될까 겁나서 아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쥰이 손을 덥썩 잡고 천천히 내린다.



 "안 되겠네. 너 취했다."
 "아직 괜찮아요."
 "그만 마셔."



 누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냅다 남은 맥주를 자기가 빼앗아 단번에 마셔버린다. 그리곤 캔이 비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누이는 하릴없이 바라만 보다가 손을 뻗어 쥰에게 안겼다. 쥰의 입가에서도 자신에게서 나던 것과 같은 술냄새가 옅게 났다. 그래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웃었다.



 "술냄새."
 "너도."



 아기를 재울 때나 할 법한 토닥임이 간지러웠다. 누이는 쥰에게 안긴 채로 품에 얼굴을 부볐다. 칭얼거리는 건 싫지만 그걸 받아줄 수 있는 것도 쥰 뿐이다. 그래서 술기운이 한김 가실 때까지, 그렇게 안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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