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태어나자마자 혼자가 되었다.
*
마음은 오랫동안 슬퍼하며 하얀 모래와 검은 하늘만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을 떠돌았다.
마음은 바람이 부는 대로, 모래가 날리는 대로 정처없이 떠돌았다. 사막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어 어디로 가든 똑같은 광경이었다. 마음은 힘겨웠다. 마음은 태어난 이래로 쭉 지쳐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홀로 떠도는 공허함과 강렬한 허무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느 날 지칠대로 지친 마음 앞에 반짝이고 괴상하게 휘고 겉껍질이 바스라진 나무 덤불이 나타났다. 이상하게도 어딘지 익숙한 기분이 든 마음은 그 아래에 기대어 누웠다. 그곳은 사막의 다른 곳보다는 조금 더 편안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지만 그 반짝거림이 마음에게 조금 위안을 주었다. 마음은 잠시 쉬기로 했다. 이제껏 걸어다닌 시간과 거리를 셀 수조차 없었다. 마음은 휴식이 필요했다.
*
이윽고 마음은 꿈을 꾸었다.
꿈에서 마음은, 하얗고 검은 어떤 것이었다.
꿈에서 마음은 손도 있었고 발도 있었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눈도 있었다. 마음은 그 눈을 깜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생겼지만 그래도 마음이 있는 곳은 사막이란 건 변하지 않았다.
마음은 자신이 기대었던 덤불을 물끄러미 돌아보았다. 잠들기 전의 풍경과 똑같았지만 마음은 이것이 꿈임을 알고 있었다. 꿈은 무척이나 생생하고, 또 생생한 만큼 허무했다. 깨어있을 때의 허무함과 다르지 않았다.
마음은 걸으면서 이따금 손으로 모래를 쓸어보거나,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들이쉬어 보았다. 숨이란 것은 걸음보다도 신기한 것이었다. 숨은 끊임없이 마음의 목과 가슴을 간지럽히며 마음이 살아있음을 각인시켰다. 손으로 모래를 조금 퍼서 그 위에 숨을 내쉬면 마치 사막의 바람처럼 모래가 날렸다. 마음은 자신이 불어낸 바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
마음은 곧 꿈이 언제 깰지 알 수 없어 불안해졌다.
어느새 반짝거리는 덤불은 돌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어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자신과 같이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 누군가를. 그러려면 한시라도 빨리 이 삭막하고 불행한 사막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닌 사막이 그랬듯이 꿈 속의 사막 역시 끝이 없었고 너무 작은 마음의 걸음으로써는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
마음은 그런 하늘은 처음 보았다.
마음은 처음으로 놀랐다.
걷고 걷는데, 마음의 앞에 갑자기 하늘이 쩌억 하고 사나운 아가리를 벌리는 것이었다. 마음은 놀라서 주저앉았다. 벌어진 하늘은 마치 마음을 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그 검은 그림자를 크게 드리웠다. 마음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마음의 말을 듣지 않았다. 또, 그 아가리 사이에서 혹시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오진 않을지, 그런 말도 안 되는 기대도 들었다.
마음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그 하늘이 무언가 뱉어내길, 혹은 그 하늘 자체가 무언가가 되어주길 얌전히 기다렸다. 마음은 이 거대한 하늘의 아가리를 만나기 전까지 꿈이든 꿈이 아니든 걷고 걷고 걷고 또 걷고 걸었으므로, 적어도 자신이 걸어온 만큼은 기다릴 수 있었다. 꿈에서 깨지만 않는다면.
*
마음은 꿈에서 깨어났다.
*
소녀에게도 모래바람은 불어왔다. 시야가 흐려져 소녀는 눈을 깜빡였다.
소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뻣뻣하게 만드는 그 모래바람을 느꼈다.
*
소녀는 자신의 친구들과 걷기 시작했다.
소녀는 자신을 구해주었던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납치되었던 이 사막을 구하러 돌아온 참이었다. 사막은 자신의 기억과 다르지 않게 하얗고 까맣고 건조하고 허무했다. 소녀가 사는 세상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이곳엔 가득했다. 황량한 바람이 소녀의 머리를 계속 헝클어뜨렸다. 소녀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거나 바람을 막으려고 하지 않았다. 소녀는 이미 사막에 익숙해져 있었다.
"마음……?"
하얀 모래바람이 줄곧 휘몰아쳤다.
마음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은 지금 소녀와 마주하고 있었다.
소녀는 희고 검기만 한 사막에서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카락, 눈, 피부, 입술 모두 다 다른 색이었다. 마음은 그 색에서 온도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 보았다. 온도는 따뜻하고, 잔잔하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마음은 소녀를 만지지 않아도 그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
소녀는 천천히 돌아섰다.
소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 자신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단 두 글자에, 순간 소녀를 스쳐가는 어느 바람이 있었다. 사막의 까끌거리는 모래바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좀 더 따뜻하고, 생기가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가득히 서식하는 마음 없는 생물들의 것이 아닌,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자로부터 나온 '숨결'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숨결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녀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 소녀와 약간 떨어져 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느낀 걸까. 아니면 이 바람이 너무나 익숙해서 그렇게 느껴졌던 걸까. 잘 모르겠다. 소녀는 이미 서있던 자리를 등지고 친구들과 함께 다른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하얀 모래바람이 뺨을 쳤다. 푹푹 빠지는 발과 목이 아프도록 건조한 공기는 소녀에게 방금 전의 따뜻한 숨결을 곧 잊어버리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녀는 문득 다시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찬찬히, 손을 앞으로 조심스레 뻗어 보았다.
그리곤 바람 사이를 휘젓다가 다시 당겨 보았다.
그런 소녀를 친구들이 의아하단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소녀는 아랑곳않고 다시 중얼거렸다.
"마음."
검은 먼지가 손끝에 묻어 나와 있었다.
*
내가 무서운가, 여자.
무섭지 않아요.
그렇군.
……이 손바닥 안에 있는 것이, 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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