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케이트 교수는 언제나 모두의 화젯거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늙고 지적인 교수 그 자체보다는 그 주위를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이 그랬다. 그의 출신 학교, 주요 요직을 차지한 후배들과 제자들, 그의 손으로 직접 구성된 능력자 집단 더 호라이즌,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아이들―그 중에서도 요즘 단연 화제인 것은 그의 손자손녀인 맥고윈 남매였다. 총명하고도 다정한 소년인 헨리와, 낯을 가리지만 오빠를 닮아 명랑한 소녀 캐럴. 헨리의 죽음은 그를 아는 누구에게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교수가 헨리 맥고윈의 죽음에 관한 조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문건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저에게는 크나큰 슬픔과 비탄을 안겨준 사건이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조사는 즉시 중단되었고, 헨리의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다. 그렇지만 헨리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를 바람처럼 떠돌고 떠돌아 작은 폭풍이 되어 있었다.

 캐럴라인 맥고윈은 어느새 손끝을 맴돌기 시작한 작은 눈보라를 바닥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소금 같은 얼음 결정이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에 작은 분수처럼 하얗게 흩어졌다. 캐럴이 만든 눈보라를 시도때도 없이 받아낸 마루바닥은 벌써 몇 번째 새로 공사해 교체된 참이었다. 하녀들은 새 마루를 쓸고 닦으며 아가씨가 능력을 아직도 조절하지 못한다며 수군거렸다. 그날 밤에 캐럴은 온 바닥을 눈으로 새하얗게 덮어버렸다. 아침에 잠을 깨우러 온 하녀는 어안이 벙벙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겨울 같지? 잠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캐럴이 묻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사장을 부르겠다며 얼른 걸음을 돌렸다. 결국은 저녁 때 할아버지에게서 한 소리 들어야 했다. "적당히 하거라." 무얼 적당히 하라는 건지 캐럴은 진심으로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모르겠지만 캐럴은 헨리의 죽음에 관한 조사 중단을 요청하는 문건을 가지고 있었다. 원본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서재를 뒤지고 다닐 적에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는 꽤나 고심했는지 문서를 여러 장 고쳐 썼었다. 캐럴은 하나하나 다 읽어 보았다. 하지만 조금 더 공적으로 고친 단어들을 제외하면 내용은 다들 비슷했다. 심지어 뉴스로 대신 들었던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럴은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쓴 걸로 보이는 것을 몰래 가지고 왔다. 어차피 다시 들춰질 일이 없는 문서들이었다. 제 방 침대에 드러누운 캐럴은 종이를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크나큰 슬픔과 비탄, 캐럴은 이 대목에서 목 울대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제 개인적인 감정이, 이어서 가슴께가 내려앉았다. 슬픔은 맞는 단어였다.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당연히 숨을 쉬고 더해서 말을 하고 웃기까지 하던 사람이 다음 날 시신으로 나타났다면 그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도 슬퍼하는게 당연했다. 캐럴이 인정할 수 없는 건 비탄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비탄하지 않았다. 적어도 캐럴 앞에선 그랬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자신의 손자 이름을 되뇌어보지도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며 손을 떨지도 않았다. 손자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그는 분명 슬프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건 조문객과 같은 표정이었다. 캐럴이 헨리의 관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때 그는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올려 캐럴의 눈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아무도 감히 혼자 남은 여동생이 죽은 오빠와 단 둘이 있는 순간을 방해하지 못하던 때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했고, 헨리의 죽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헨리가 죽은 이후로 자연스럽게 헨리에게 쏠려 있던 사람들의 이목은 남은 여동생에게로 옮아 갔다. 그래서 헨리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사그라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캐럴이 더 호라이즌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픈 눈빛을 하고 웃어주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더 호라이즌에 들어간 사람이 '헨리의 여동생'이 아닌 '캐럴 맥고윈'이라는 사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재뉴어리마저도 처음엔 그랬다. ……아니, 아무도는 아니었다. 멜빈이 있었으니까. 그만이 캐럴이 호라이즌에 들어갔을 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건 캐럴 자체에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지극히 멜빈 리히터다운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그 무관심과는 별개로, 캐럴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 너무 어린 애 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캐럴은 한 번도 멜빈의 앞에서 굳이 싫은 티를 낸 적은 없었다. 멜빈도 캐럴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아닌지 전혀 관심 없었겠지만.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헨리의 장례식에서 캐럴 바로 다음에 이름이 불린 인물이었다. 그는 헨리의 생전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마음에…….

 "아가씨, 또 바닥이……."

 한참이나 노크하던 하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침대 밑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캐럴은 한숨을 쉬는 하녀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문을 넘는 순간 바깥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멜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관 별개로 캐럴은 그의 작업실을 제법 드나들었다. 리첼 스트라우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재뉴어리 정도는 되었다. 물건을 고쳐달라는 이유도, 호라이즌 관련 일 때문도 아니었다. 멜빈은 캐럴이 말없이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가끔 이유를 물어보긴 했지만 특별히 대답을 안 해도 상관 없었다. 가만히 구석에 앉아 있으면 때로는 하도 작동해서 달아오른 기계를 식혀달라며 느릿하게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기계가 차가운 금속의 온도를 되찾을 동안 캐럴은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작업실 내부를 열심히 눈을 굴려 살펴보았다. 두 개의 제피,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기계, 죄다 열려 있는 공구 상자, 구석에 처박힌 책장과 서랍, 종이들이 잔뜩 널려있는 책상 위, 그 중 뜯지 않은 전보……

 캐럴이 작업실에 도착할 때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눈을 찔러서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캐럴은 한 번도 노크를 하거나 벨을 울린 적이 없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낡고 무거운 쇠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자마자 기름 냄새와 잉크 냄새와 금속 냄새가 합쳐져 코를 찔렀다. 노을진 바깥에 비하면 밤이 몇 시간은 더 빨리 와버린 듯 어두운 작업실에 눈이 적응할 때까지 현관에 서 있다가 이내 발을 떼었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공구와, 미친듯이 휘갈겨 써내간 수식들로 꽉 찬 종이를 밟지 않고 가는 것쯤은 이제 당연했다. 캐럴은 작업실의 한가운데에 도달해서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멜빈은 대개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거나 기계를 만지고 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멜빈."

 낯간지럽게 이름을 불러보아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멜빈!"

 목소리를 더 크게 해봐도 사방은 조용했다. 그 멜빈 리히터가 작업실에 없다면, 어딜 갔으려나. 캐럴은 다시 사방을 살펴 보았다. 멜빈을 찾는 게 아닌, 이곳에 없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책상 쪽에서 무언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노란색 제피가 캐럴의 음성을 인식하고 부팅된 모양이었다. 네모난 화면 안에 빨간색 사선 불이 두 개 들어온다. 캐럴은 그걸 도저히 눈이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제피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캐럴 앞으로 다가왔다. 균열지고 딱딱한 음성이 제피에게서 흘러나왔다.

 "음성을 인식합니다, 캐럴라인 맥고윈."
 "멜빈은 어디 있어?"

 캐럴은 이 기계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에 아직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검색합니다, 멜빈 리히터― 제피 L 사용자 확인. 반경 15m 내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외출한 거야?"
 "검색합니다, 외출―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외출이 아니라면 어디 갔어?"
 "제피 L 내에서 외출과 유사한 단어가 포함된 영상을 찾았습니다. 작성자, 헨리 맥고윈."

 멜빈 리히터는 헨리 맥고윈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캐럴은 멜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캐럴은 아까와 비슷하게 목 울대와 가슴께가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기계의 음성이 조합해낸 헨리의 이름은 다른 음성과 마찬가지로 균열이 져 있었다. 사실 헨리가 멜빈에게도 무언가 남기고 갔을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헨리는 캐럴에게 자주 편지나 쪽지를 남겼고, 자그마한 선물도 여러 번 전해주곤 했다. 캐럴은 멜빈의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뜯지 않은 전보들을 떠올렸다. 손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재생… 해줘."
 "영상을 재생합니다."

 캐럴의 생각은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었다. 글씨나, 어디서 산 것, 억지나 우연으로라도 찍었을 지 모르는 사진. 캐럴은 헨리가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를 남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게 헨리가 캐럴에게 남기고 간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편지들, 캐럴이 떠올라 산 작은 목걸이, 어깨를 감싸고 웃으며 찍은 사진. 영상은 편지도 아니었고, 선물도 아니었고, 사진도 아니었다. 영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제피가 영상 로딩을 마치자 붉은 빛이 사라졌다. 캐럴은 덜덜 떨며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동안 캐럴의 눈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그리고 일순간,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 헨리의 눈.

 "이거 되는 건가? 되는 거 맞지, 제피? 좋아, 멜빈. ……어, 인사해야 되나? 아까도 했는데. 안녕, 멜빈. 아하하, 제피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니. 그런데 도저히 너한테 얘기하는 것 같진 않네. 그냥 제피한테 전해달라고 해야겠어. 어디서부터 얘기하지? 그래, 제피. 내가 계속 여행했던 건 알지? 곧 5년 후의 미래로 갈 거야. 아돌프 박사는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되는 집단을 찾아내고, 라파엘이라는 사람에게 그 집단이 어떻게 권력을 가지게 되는지 전하라고 하셨어. 나머지 일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거라고……. 난 이 일을 끝으로 시간 여행하는 일을 그만 둘 거야.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네 주인이 날 은근 걱정하거든. 다음에 보자, 옐로우 키드."

 영상은 그대로 멈추었다. 헨리는 웃고 있었다. 사진에서의 웃음도 아니었고, 기억 속의 웃음도 아니었다. 그건 진짜 헨리였다. 그 순간에 존재했던, 그 순간에 살아 움직이던 헨리.
 캐럴은 도저히 영상을 다시 재생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멈춘 웃음, 그 다음의 영상을 보고 싶었다. 그 다음의 헨리가 보고 싶었다. 다음에 보자. 그 다음이 보고 싶었다. 헨리의 다음. 재생을 끝마치고도 캐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제피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화면의 헨리가 사라지고 붉은 불빛이 다시 들어온다. 그게 끝이었다. 다음이 아닌, 그대로의 끝. 헨리는 캐럴에게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습관처럼 떠난 여행이었고, 습관처럼 돌아올 줄 알았었다.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캐럴은 제가 썼던 일기를 떠올렸다. "오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약속을 어겼다." 헨리가 약속을 어긴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내려앉았던 목 울대가 완전히 부숴진 느낌이었다. 점점 체온은 뜨거워졌지만 반대로 손끝은 아플 정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캐럴은 울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울지 않는다는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약속을 못 지키는 건 지난 여름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캐럴은 틈이 날 때마다 헨리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리려고 했다. 캐럴, 하고 부를 때의 목소리, 억양, 표정, 입의 모양을 떠올리려고 애쓴 적이 몇천 번은 되었다. 기억은 캐럴의 머릿속을 바람처럼 떠돌고 떠돌다가 폭풍이 되지 못한 채로 흩어져 버렸다. 캐럴은 헨리가 하는 인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웃는 소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캐럴은 헨리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없었고, 캐럴은 헨리가 웃을 때 눈이 어떻게 접히는지, 입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말할 때 시선을 어떻게 굴리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캐럴은 그랬다. 

 "……언제 왔어?"

 하지만 멜빈 리히터는 다르다.
 그는 헨리가 생전에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 어떻게 웃었는지 언제고 다시 되돌려볼 수 있다. 멜빈 리히터는 헨리 맥고윈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헨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멜빈이었다. 가장 가까운, 캐럴은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헨리가 캐럴에게 해주지 않은 말들, 멜빈은 언제든지 다시 듣고 볼 수 있다. 헨리가 유일하게 멜빈과 캐럴에게 똑같이 남긴 것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거짓말.
 제피가 멜빈에게 먼저 날아갔다. 캐럴은 제피를 따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멜빈은 평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당황하거나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하다못해 캐럴이 우는 걸 보고 걱정하는 기색도 당연히 없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똑바로 캐럴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었다. 마치 장례식 때의 할아버지처럼, 캐럴과 헨리가 마지막으로 단 둘이 있을 때 감히 끼어들던 그 시선처럼. 그러나 너무나 명백하게, 이번에 끼어든 것은 캐럴이었다. 그게 캐럴이 가장 견딜 수 없는 사실이었다. 들켰다는 얼굴을 한 것은 멜빈이 아니었다. 캐럴이었다.

 캐럴은 멜빈이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작업실을 나섰다. 멜빈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옆엔 제피가 있었다. 헨리의 영상을 수십 수천 수만 번은 다시 재생할 수 있는 제피.

 





멜빈 시점의 틈새에서 이어지는 걸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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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cked Act





 First Think



 참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탄야 랜킨은 생각했다.


 그는 실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빛이었고, 백색 그 자체였으며, 동시에 초록빛 불을 뿜는 생명이기도 했다. 검은색 렌즈에 가려진 눈동자를 반딧불이 비추어내면, 밤의 장막을 걷는 에오스 같은 우아한 갈색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다 이내 다시 가리워졌다. 그는 그리도 아름다웠다. 온 빛이 그를 가리키는 것 같았다. 저기 저 아름다운 청년을 보라며.


 그러니 그가 당연히,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탄야 랜킨은 소리 없이 웃었다.





 First Act



 데샹이 직접 전갈을 보내는 일은 드물기도 했지만,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미쉘 모나헌은 불안함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예의범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친 노크부터가 그랬다. 닥터가 만나자고 했어. 자택에서. 이따 저녁에. 급히 내뱉느라 제대로 문장조차 되지 못한 단어들이 툭 발치에 떨어졌다. 하얗게 탄 눈동자가 그 문장들을 좇아 굴러간다. 다음부턴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얘기하렴, 그렇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쉘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눈이 내 눈밖에 볼 수 없도록 만들어주마."



 천천히 말을 마치자 미쉘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저리도 유약한 기적이라니. 랜킨은 무심하게 돌아섰다. 문이 닫히는 소리 사이로 불규칙한 발걸음이 덫으로부터 도망치듯 빠르게 빠져나갔다.


 해가 질 무렵, 랜킨은 전갈이 까드득거리며 꼬리를 치켜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유해주는 벌레 떼가 있단다. 아무리 속살거려도 전갈은 들을 수 없을 터였다. 랜킨은 꼿꼿이 선 전갈을 꼬리부터 쥐어 천천히 바스라뜨렸다. 진득한 독이 창백한 손을 씻어내듯 흘러내리다 이내 휘발되어 사라졌다. 데샹 앞에서는 전갈을 풀어 놓을 마음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을 굳이 녹여버릴 필요까진 없으니까. 그렇지만 가만히 두어서도 안 된다.


 마음에 든 것은 반드시 사로잡아야 해, 손아귀에 넣고 술잔을 기울이듯 천천히 내 속으로 흘려버려야지. 아무도 같은 술을 다신 맛볼 수 없도록.



 /



 밤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벌레가 나돌아다니기 좋은 밤이로구나. 차가운 공기가 폐부에서 녹아내렸다.


 데샹은 자택 문을 거의 잠가두지 않았다. 초대한 사람이 있어서인지, 본래부터 신경쓰지 않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알 필요조차도 없었고. 랜킨은 익숙하게 문을 열었다. 현관의 불은 언제나 꺼져 있었다. 오직 데샹 자신이 있는 방만 밝혀 놓으니까. 달빛조차 들지 않아 밤의 거리보다도 더 어두운 방을 가로질러 걸었다. 하이힐이 벽에 부딪쳐 초인종 대신이라도 되듯 울렸다. 랜킨은 가장 안쪽 방의 문을 열어제꼈다. 눈이 부시다고 느낄 정도의 밝은 조명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데샹은 여지 없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이쯤 도착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혹은 오히려 언제 들이닥칠지 굳이 예상하지 않았거나. 테이블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는 그를 지나쳐 등받이가 없는 벨벳 의자에 앉았다. 제법 수수한 척 하는, 그러나 상당한 기술과 재력이 사용된 이 방에서 유일하게 검은색을 가진 것이었다. 데샹이 놓은 가구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조금 기다리겠어?"

 "그렇게 하지."


 랜킨이 생각하건대 이 방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나 데샹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는 법이 없었다. 행동에서도, 그의 행보에서도 또한 그랬다.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 뻔한 습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약점을 찔린 적이 없었다. 아무도 그에게 뒷모습이나 그림자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랜킨은 그 등을 바라보았다. 바깥 일을 끝내고 온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아직도 하얀 가운을 차려 입은 새하얀 등.


 방 안에서 미약하게 울리는 초침 소리가 서른 번을 넘어갈 즈음 랜킨은 일어섰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었지만 머릿속을 간결하게 정리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이힐 소리가 다시금 울리자 데샹은 그제서야 돌아보았다. 자신의 제안에 가까운 부탁을 어긴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겠지. 세 발자국, 랜킨은 덥석 그의 입술을 물었다. 전갈이 꼬리로 적을 쏘는 것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사냥감이 독에 잠겨 잠잠해질 때까지 인내심있게 기다렸다.


 이윽고 사냥감이 허리에 팔을 감아왔다. 지극히 본능적인 손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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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럿은 천천히 고개를 늘어뜨렸다. 양갈래로 낮게 묶어낸 머리카락이 샛노란 우비 위로 쓸리는 소리가 귓가에 어슴푸레 들렸다. 사각, 삭, 사악. 뱀이 기어가는 소리. 문득 뱀의 눈동자를 떠올린다. 드렉슬러 아저씨의 서재에서 커다란 사전을 읽다가 본 사진에서 마주친 눈이었다. 흐릿한 잉크로는 애초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가늠할 수 없는 늪처럼 시커먼 눈. 이빨이 아닌 그 시커먼 색에 독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회사의 그 '격류'야?"
 "네? 네……."
 
 삐딱하게 물어보는 목소리가 정적을 베어내자 샬럿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억 속이 아닌 눈앞에서 마주한 그의 눈은 뱀의 눈과 정반대로 하얗게 불타버린 재와 같은 빛이었다. 그 강력한 염동력 때문에 어릴 때 눈동자가 타버렸다는 소문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소문 중에서도 손꼽히게 유명했다. 글쎄, 샬럿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재였을 것 같았다. 가진 능력과는 상관 없이 본래부터 그 모습이었을 법한, 책에서 봤던 그 뱀처럼 눈에 진득한 독을 품은 사람. 샬럿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종이에 인쇄된 사진처럼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뭐하자는 거야?"

 그가 불쾌한 듯 말했다. 그제서야 샬럿은 그의 눈이 아닌 다른 것까지 보았다. 잘 세공된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로운 물방울이 그의 왼쪽 눈동자 바로 앞에 멈추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눈을 찌를 듯 했다. 물방울이 거슬리는 듯 그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거만하게 고개를 든 채 서 있었다. 미세하게 진동하던 물방울은 샬럿이 천천히 손을 거두자 맥없이 분사되며 허공으로 사라졌다. 눈에 물기가 들어간 듯 잠시 눈을 깜빡이던 그가 이윽고 씨익 웃었다.

 "너랑 놀면 재밌겠네."
 "…저랑 놀려구요?"
 "왜? 놀면 안 돼?"
 "아니요……."

 샬럿이 느릿하게 반문하자 낮게 들떠있던 그의 목소리가 곧바로 삐뚤어졌다. 마치 어른에게 허락받지 못한 어린 애처럼. 그럼에도 그의 목소리는 샬럿 또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압적이었다. 샬럿이 아는 또래 중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다. 마를렌 언니.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무의식적으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힘을 타고난 사람.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듯 입꼬리를 비틀고 샬럿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는 그에게, 샬럿은 변명처럼 덧붙였다. 안그래도 작은 목소리가 더 기어들어갔다.

 "우리, 싸우려고 만난 거잖아요…… 어?"

 순간 지나가던 바람이 샬럿의 어깨를 뒤로 세게 밀어붙였다. 아니, 바람이 그럴 수 있을리가 없는데? 미처 판단을 마치기도 전에 샬럿은 흙먼지 속에 넘어져 있었다. 거친 땅에 손바닥이 약간 긁히고 골반과 엉덩이가 저릿하더니 이내 통증이 몰려왔다.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지 못하는 샬럿에게 그가 척척 걸어오더니, 바로 앞에 털썩 앉곤 턱을 괴었다. 샬럿은 갑자기 가까워진 얼굴에 몸을 뒤로 뺐다. 그는 손이라도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샬럿의 눈을 똑바로 맞추곤 웃음기가 만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우자며?"

 적어도 마를렌 언니는 이 정도로 유치하진 않다. 이건 거의 8살 수준이다.
 겨우 몸을 일으킨 샬럿은 한발짝 물러섰다. 가까이서 보니 두 뼘이 넘는 키 차이가 꽤 실감이 났다. 염동력으로 시허옇게 타오르는 눈동자와 거만한 시선, 눈가에 어렴풋이 진 그림자와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가 눈에 세세히 들어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하는 싸움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리 우산을 펼쳐도 몸의 반은 흠뻑 젖게 되기 때문이었다. 고민하던 샬럿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제가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건 아니에요."

 반은 맞고, 반은 애매한 말이었다. 회사, 정확히는 크루그먼 이사님이 지시한 임무였고, 처음 봤을 때까지만 해도 소문의 그 '경이'를 눈앞에 마주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설레는 기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마를렌 언니를 떠올리게 했던 순간부터 샬럿의 기분은 조금씩 삐걱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샬럿의 기분 따위는 애초에 읽으려 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난 아닌데? 싸우고 싶거든, 너랑."
 "……비구름 좀 그릴게요."

 먹구름이 휘청이며 모여들더니 일순간 그와 샬럿의 머리 위를 덮었다. 빛이 차단되고 이내 장대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샬럿은 우비의 모자를 얼른 뒤집어썼다. 우산까지 펼치고 싸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비가 내리든 말든 그는 까딱도 하지 않았다. 비는 그를 전혀 적시지 못하고 있었다.

 "비 따위는 재미 없어. 다른 건?'
 "이건 준비 같은 거예요."

  샬럿이 설명하자 그는 제법 흥미롭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샬럿은 땅을 흠뻑 적신 비가 더이상 스며들 곳이 없어 흐르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준비해두지 않으면 이 주변은 분명 지나치게 지저분해질게 뻔했다. '조용히, 깨끗하게', 임무를 지시할 때마다 크루그먼 이사님이 강조하는 단어였다. 샬럿 역시도 잔해가 잔뜩 남는 싸움은 좋아하지 않았다. 우산도 펼치고 싶었지만 그의 앞에서 그럴 여유까지 부릴 만한 배짱은 없었다. 그는 빗속에서도 젖지 않아 마치 신과도 비슷해 보였다. 샬럿은 심기가 꼬이는 걸 느꼈다.

 "좀 젖어주세요."

 샬럿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옷이 물에 푹 젖어 몸에 여지없이 들러붙었고 깔끔하게 정돈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순간 당황한 듯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양손 중 왼손을 꺼내어 휘둘렀다. 하지만 스스로가 여전히 비를 맞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그는 샬럿을 노려보았다.

 "너, 이거 어떤 옷인줄은 알고."
 "딱 봐도 우비는 아니네요."
 "누나가 오늘 아침에 다려준 옷이란 말이야!"
 
 짜증내며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터는 모습이 영락 없는…… 애새끼였다. 샬럿은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그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구기는 데에는 성공했다.

 "너, 가만 안 둬."

 뒷통수를 묵직하게 때려오는 통증에 이번엔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순간 귀가 멍멍해져서, 땅에 부딪치는 빗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검게 흐려졌다가 느리게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곧바로 몸이 공중으로 들렸다가 웅덩이로 패대기쳐졌다. 아까 넘어졌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다리가 비틀려 힘이 들어가질 않았고, 갈비뼈가 부러진 것마냥 순간 숨이 막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마저도 비가 얼굴에 들이쳐서 숨을 쉬는 건지 물을 먹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미처 자신을 덮쳐온 힘을 인지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꼴 좋다."

 의기양양한 그의 목소리에 샬럿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왼손 검지를 까딱거리자 염동력이 샬럿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발버둥치는게 무색할 정도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가벼웠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수갑에 묶여서 그의 발치까지 끌려갔다. 손목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다리에 땅에 끌려 생채기가 생겼다. 엷은 핏물이 샬럿의 발치에 흘렀다. 그는 아까와 같이 털썩 앉더니 샬럿의 턱을 잡곤 억지로 눈을 맞췄다.

 "더 기게 해줄까?"
 "……."
 "왜, 벌써 겁 먹었어?"

 순간 그 눈을 짓이겨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샬럿은 어느새 수갑이 풀린 오른손을 그의 눈에 갖다대었다.

 "……눈에 불이 났네."
 "뭐?"
 "불, 꺼줄게요."
 "너, 뭐하는…… 이 손 안 치워?!"

 샬럿이 주먹을 채 쥐기도 전에 그가 기겁하며 샬럿을 뿌리쳤다. 마치 눈알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양손으로 왼눈을 부여잡았다. 샬럿은 펼쳐진 제 손바닥을 거두곤 일어섰다. 비가 상처를 쓸어대서 다리가 온통 피로 젖고 쓰라렸다. 조금 더 내려야겠어. 기운 없이 손가락을 휘두르자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그리고는 땅으로 흘러든 피를 거두어 흘렀다.

 "그 정도론 그냥 충혈된 정도일 거예요."
 "……너……."
 "양손, 드디어 꺼냈네요."
 
 그가 양손을 내리자 온 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한 그의 왼쪽 눈이 드러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하얗게 타 있던 눈동자는 붉은 흰자위에 둘러싸여 애처로워 보였다. 그의 얼굴에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표정이 서려 있었다. ……공포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분노했다고 하기엔 수그러든 빛.
 두려움. 두려움과 비슷한 빛이었다.

 "너무 지저분해서 쓰지 않기로 했지만…… 죄송해요."

 처음부터 흐르는 물을 다루었으니 그 정도는 이제 자면서도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물을 비틀어내는 방법을 익힌 것도, 흐르는 물만 다루려니 지겹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임무에서 사용해보니 장마 같은 비구름으로도 몇 시간을 씻어내야 할 정도로 현장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탓에 쓰지 않은지가 벌써 몇 년이었다. 아마 지금 그의 나이 때였을 것이다. 몇 년만이더라도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수정체나 망막은 그대로인 채 흰자위의 핏줄만 모조리 터뜨린 게 스스로도 조금 신기했다. 아니, 아마 그건 샬럿의 실력이 아니라 그의 실력일 것이다. 옷에 집중하는 신경은 느슨하더라도, 제 몸 구석구석은 예민하게 제어하는 능력. 타오르는 눈동자를 처음 마주친 다음으로 그의 코드네임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듯 멍해져 있었다. 이제는 끝나지 않는 소나기같은 비를 온몸으로 다 맞으면서. 샬럿은 조용히 그의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딱히 덧붙일 말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그 입에서 이젠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입이 일그러지며 호선을 그었을 때 눈을 깜빡였다. 착각인 줄 알았다.

 "술래잡기 시작이야."

 불이 꺼진 붉은 눈에서 새로이 타오르는 빛은 다름아닌 희열이었다.
 샬럿은 문득 비구름을 올려다보았다.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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