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해."


외관



 주홍빛 섞인 선명한 진저색 머리카락이 단연 두드러진다. 시원시원하고 결 좋은 곱슬머리가 보기 좋게 헝클어졌다. 크고 속눈썹이 짙은 눈매에 깊이 박힌 탁한 옥빛 눈동자가 대조적이다. 뺨이 쉽게 달아오르는 체질이고 도톰한 입술은 머리카락과 같은 빛깔이라 혈색이 화려하다. 웃는 표정과 무표정의 갭이 큰 편인데, 제 기분이 나쁠 때면 제법 오밀조밀하고 사랑스러운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위압적인 분위기를 내뿜기도 한다. 그러나 표정 자체가 다양하고 감정표현이 확실해 수시로 표정이 바뀌며, 웃는 모습은 발랄하다. 당당한 자세와 피하는 것 없이 항상 똑바로 마주하는 눈동자는 때로 거만하기까지 하다.

 적당히 마른 몸에 근육량은 많지 않아 체술에는 별다른 특기가 없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기백만은 절대 왜소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정도. 살결에 흔하디 흔한 흉터 하나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고생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귀는 뚫지 않았고 가끔 귀찌 형태의 귀걸이를 착용할 때가 있다. 러플 소재의 블라우스나 스커트, 색감이 화려한 코트 등 로맨틱한 디테일을 즐겨 입어 한눈에 보기에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인상이 짙다. 구두굽은 높지 않고, 다소 장식적으로 느껴지는 레이스 소재의 장갑을 자주 착용한다. 어디에서나 눈에 띄지만 특별한 의도 없이 순전히 취향에만 따른 착장이다. 일을 하거나 이따금 눈에 띄어야 하지 않을 때만 검은색이나 짙은 색을 입는다.


이름
J. Augustus Halloway
제이 어거스터스 할러웨이

나이
23살

성별

키 / 몸무게
168cm/55kg

진영
아르미야[Armiya]

간부 신청 X


능력/ 등급

2등급 노이저

발산
The Diffusion

1. 감정 따위를 밖으로 드러내어 해소함. 또는 분위기 따위를 한껏 드러냄. 
2. 냄새, 빛, 열 따위가 사방으로 퍼져 나감. 

 특정한 것의 온도를 주변에 있는 것들로 발산시킬 수 있다. 열기를 단숨에 발산시켜 급작스럽게 불씨를 폭발시키거나 반대로 냉기를 발산시켜 얼어붙게 한다. 이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직접적으로 불이 닿지 않아도 사람이 화상을 입고 죽게 할 수 있으며, 혹은 동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자신은 이 발산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면 적정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발산 시 기체의 온도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기체를 제외하고 반드시 대상까지 연결할 수 있는 물리적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또한 목표물을 정확히 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특정 온도가 범위 내로 퍼져나가게끔 하기 때문에 최종 발산까지 걸리는 시간은 거리에 따라 다르며 주변 환경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 지점으로부터 멀리까지 발산시킬수록 정확한 온도를 전달할 수 없게 되며, 가장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범위는 10m 이내.

능력을 오래, 멀리 사용할수록 체온이 급격히 저하되어 저체온증에 이를 수 있다.


성격
 
[거침 없이 확고한]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 둔] [두려움 없는 솔직함] [치밀하게 이기적인]

 고집이 세고 거침없으며 지독하게 확고한 탓에 쉽게 굽히지 않는다. 제 할말은 꼭 해야지만 성에 차고, 마음 먹은 바는 끝까지 해내고야 만다. 무엇보다 제멋대로이며 이기적이다. 완전한 악인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정의와 도덕 같은 선한 가치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이득을 가장 우선시하며, 그 다음으로는 제 기분과 감정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만 보아서는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해낼 수 없다.

 기본적으로 계급이나 상하관계가 명확한 집단에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다. 구속당하기도 싫어하며 타인의 충고나 참견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기를 싫어하는 만큼 타인의 영역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구분 역시 확실해 무엇이든 절대 빼앗기지 않고, 반대로 강제로 빼앗지도 않는다. 갖고 싶은 것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주인이 확실하다면 크게 욕심내지 않는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가까이 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차가 크다. 자신이 마음을 열고 정을 준 사람에게는 발랄하고 사랑스럽게 돌변하기도 하지만, 적이라고 인지한 사람에게는 냉정하고 잔인하다.

 감정과 생각을 대체로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마치 자신의 능력처럼 그대로 '발산'시킨다. 표현이 확실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무모할 정도로 두려움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이 내뱉는 말과 행동을 스스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움직이는 이면을 가지고 있다. 자기와 상관이 없다고 느끼거나 자신에게 너무 벅차다고 느끼는 일이라면 미련 없이 포기한다.
 

기타

1. 인적사항

1996년 8월 24일생, 혈액형 RH+ AB형. 국적 영국.
J는 본명의 이니셜. 정확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2. 가족/인간관계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지만 정확한 핏줄과 출신지는 미상이다. 현재는 런던 근교에서 홀로 살고 있다. 따로 사는 어머니가 있고, 다른 가족이나 친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어머니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고, 사이도 무척 좋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 연락 중인지는 미지수다.
 가족 외의 인간관계도 그다지 넓지 않다. 잭 앰브로즈 이외의 특별한 친구도 없으며, 하다못해 흔한 소꿉친구나 아는 지인 따위도 없다. 아르미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평범한 일반인이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토록 관계가 좁은 것이 의문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인간관계에 큰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르미야 내에서는 그럭저럭 원활하게 생활하고 있는 편이다. 유별나게 가깝다 싶은 사람은 없어도, 다가오는 사람을 밀쳐낼 정도까지도 아니라서 웬만하게 성격이 틀어져 싸우지 않은 이상은 조직원들과 친하게 지낸다.


3. 이능력 발현

 이능력이 처음 발현되었을 때 21세였다. 쓰레기 소각장 근처를 지나가던 중 불의 온도를 발산시킨 사건이 첫 번째. 조그맣게 타고 있던 불이 갑자기 크게 폭발하듯 커져 근처에 있던 학생 다섯 명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목격자로서 조사받았으며,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사고로 종결되었다. 이후 한 달 동안 갑자기 사물이 발열하여 녹아내리거나 작은 불꽃이 폭발하는 등 이능력이 통제 없이 발현되었다. 이능력자들이 노이저로 명명된 이후에야 자신이 이능력자임을 자각했지만 정확한 능력을 깨닫고 통제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불씨 등을 크게 키워 화재를 내거나 아예 얼음으로 뒤덮는 수법으로 능력을 사용했지만, 능력을 자각하고 통제하게 되면서 방식이 바뀌었다. 지금은 직접적인 불이나 얼음보다는 오랫동안 켜져있던 전구나 형광등, 밤공기를 맞고 차가워진 외벽 등의 온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불이나 큰 열기가 없었는데도 전신 화상으로 사망한 등의 사건은 대부분 제이의 작품이다.

 자신이 노이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그다지 오랜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던 케이스.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자각했으면서도 큰 경각심을 느끼지 않았다. 이능력의 이용이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고 능력을 마음껏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몸을 사지로 내던지지는 않는다. 지금도 자신이 이능력자라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데, 이능력을 단지 자신의 일부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이능력으로만 보여지고 평가당하기를 굉장히 싫어한다.


4. 행적

 자신이 이능력자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그래서 이능력자가 배척받던 시기에 거의 모든 인간 관계가 끊어졌다. 비능력자인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될 것을 우려해 정부의 격리 정책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정책이 무산된 이후에도 매우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9년 1월 즈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잠적했다. 반년 가량이 지난 후인 2019년 7월 아르미야에 들어오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조직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했으며 동시에 범죄자로서의 커리어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말단에 가깝지만 자유로운 조직 분위기에 힘입어 상하관계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행동한다. 경어를 쓰는 모습을 극히 보기 드물고 웬만한 고위 간부가 아닌 이상 존칭조차 잘 붙이지 않는다. 대신 누구에게나 편하게 대하고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여서 조직 내의 인간 관계는 나쁘지 않다. 할 말 다 하는 막내 정도의 포지션이지만 남을 선배 대접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아르미야에 들어온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러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미야에서 제공받는 돈과 지원 등이 제법 필요하다는 뉘앙스는 자주 내비친다. 돈 계산에 있어서 무엇보다 확실하며, 조직 측에서 자신의 신변을 보장해주지 못할 임무는 참여하기를 꺼린다.

 발산 능력을 이용해 직접 몸싸움에 참여하지 않아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주로 암살에 가까운 청부 살인에 동원되며, 증거 인멸이나 현장 훼손이 필요한 경우에도 참여한다. 조직에 들어올 때에만 해도 이능력을 제외한 기타 신체 능력은 일반인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체술을 익혔기 때문에 자기 한몸 정도 겨우 챙길 정도는 싸울 수 있다. 싸움보다는 특유의 성격 덕분에 심문과 협박 등에 소질이 있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범죄에 연고라고는 없던 일반인이 들어온 것치고는 적응 속도도 무척 빨랐고 수법도 확실해 뒤탈이 없는 편에 속한다. 사람을 죽이고 협박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지만 아르미야의 일원으로서, 혹은 개인의 감정 때문에 행하는 모든 범죄와 비도덕적 행위에 어떤 가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5. 기타

 -은색 지포라이터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흡연자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가지고 다니는 발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완전히 비흡연자인 것은 아니고, 아르미야에 막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흡연자였지만 잭이 싫어해서 끊었다. 피우던 담배는 버지니아 슬림 레드. 호신용 나이프도 들고 다니기는 하지만 여태까지는 쓸 일이 많지 않았다.

 -단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시도때도 없이 사탕을 물고 다니며 심지어 일을 할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사탕이 아니더라도 달콤하다면 뭐든지 좋아하며, 반대로 쓴 맛이 나면 거의 못 먹는 수준. 주머니에 항상 사탕을 몇 개씩 지니고 다닌다.

 -레이스 장갑을 자주 끼고 다니는데, 딱히 이능력 통제 같은 별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다. 그냥 장갑을 끼고 다니는 친구에게 맞춰 들인 습관이다.

 -아르미야에 들어오기 전에는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인 대학생이었으나 잠적했던 시절에 이미 학교를 그만두었다.


선관

잭 P. 앰브로즈
고등학교 친구.

 정확한 나이는 다르지만 학년이 같았기 때문에 그냥 친구다. 매일 사소한 일로 싸우고, 도저히 맞는 취향이 하나도 없어 자주 으르렁거리지만 그래도 친구다. 비슷한 시기에 둘 다 이능력이 발현되었다. 잭의 주변인 중 그가 이능력자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제이는 가깝던 사람에게 자신이 이능력자임을 알렸고, 그 중 지금까지 가까운 사람은 잭 밖에 없다.

 잠적 시기에 잭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아르미야에 들어가고 나서야 다시 연락했다. 그 사이 잭은 그리핀에 들어가 둘의 길이 완전히 반대로 갈렸다. 그러나 정작 잭은 제이가 잠적한 것이나 서로 아르미야와 그리핀으로 갈리게 된 것보다는 잠적한 사이 제이가 담배를 피우게 된 것에 더 화를 냈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 담배는 끊었다.

 지금은 겉보기에는 전과 같은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둘의 소속이 달라진 이상 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 아르미야 내에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절대 이야기하지 않으며, 잠적했던 시기와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선관 동시 합격 여부 O
O

선호플: 그런 거 모름 (성관계 비선호)
기피플: 역시 그런 거 모름... 노는게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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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임프Imp) 신청 여부 X


비밀설정

 출생지는 영국 빈민가. 5살 즈음 부모에게 버려졌다. 비슷하게 버림 받은 아이들을 모아 방치하듯 키우며 후원금을 챙기는 낙후된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도망쳤고, 기적적으로 보호자를 만나 자랐다. 그 보호자가 지금의 어머니이며 서류상으로는 2년 후에 입양되었다. 이때부터 다수의 사람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에게만 깊고 좁은 애착을 형성하는 성격이 생겼다. 입양 이후에는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모녀 간 사이도 굉장히 좋았다. 

 능력이 각성하고 이능력의 원인이 특수인자로 밝혀지자마자 가장 먼저 친부모를 찾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것을 그들의 탓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쭉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찾아다녔고, 결국은 친부모가 사는 아파트까지 알아내 자신의 능력으로 불을 질렀다. 가연성 소재를 아파트 곳곳에 뿌리고 열을 발산시켜 방화했으며 사망자 12명, 부상자 23명의 대형 화재로 번졌다. 사망자 중에는 친부모와 그들의 새 딸도 포함되었다. 곳곳에서 가연성 소재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정작 불이 붙은 원인 자체를 알 수 없어 사건이 미궁에 빠져 있었으나 이능력자까지 수사 범위가 확대되어 용의자로 지목되자 잠적했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정부와 이능력자를 대하는 일반인들의 태도에 대한 반감, 방화사건의 용의자로 쫓기며 필요해진 신변의 보호 등의 이유로 아르미야에 들어갔다. 성격상 마냥 용의자로 쫓기느니 차라리 조직 아래에서 하고 싶은 대로 범죄를 저지르며 살기를 선택한 쪽이기도 하다.

 정확한 본명은 Jill. 지금 이름은 전부 어머니가 지어주셨으며, 성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 아르미야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자신의 본명을 언급하지 않으며, 직접 알고 부르는 사람은 잭 뿐이다. 잠적한 이후로 여태까지 어머니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만큼은 범죄 조직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공지/ 세계관 확인질문] 

다음 문장이 맞으면 Y 틀리면 N을 선택해주세요


1.  노이저의 등급은 타고난 능력의 발현 정도를 의미할 뿐이며,
본인이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실제 전투에서는 급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2. 아르미야 진영에는 돈이 없습니다.
N

3. 그리핀 진영의 팀원들이 착용하고 있는 팔찌는 장기적으로 능력에 의한 수명의 감소를 늦출 수 있으나,
능력의 사용이나 체력 저하에는 큰 영향이 없습니다.
Y



성인 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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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지막한 볕이 누이의 속눈썹 사이를 파고들었다. 누이는 꿈결로부터 눈을 떴다.



 뻑뻑하고 따가운 시야 사이에 가장 먼저 든 것은 훤히 방 안을 채운 물결 같은 볕이었다. 출렁거리는 빛의 잔영을 찬찬히 훑다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시야를 가렸다가, 금세 손을 내리곤 다시 부스스 번지는 망울로 눈동자를 옮겼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빛이었다. 다만 조금 안락한 색깔을 띠었다. 잠기운이 한 김 가실 때까지 그렇게 하얀 벽을 반으로 가른 경계선만 쫓으며 누워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수면 위로 기포가 떠오르듯 가만 터지는 조그마한 떠오름이 있었다. 별 건 아니었고 이제서야 봄이라는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옷의 두께가 얇아진지는 몇 주나 되었는데 기온과 체온의 간극이 너무 길어 스스로가 둔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쨌거나 부정할 수 없이 봄이었다. 벚꽃은 한참 전에 떨어졌고 벚꽃 그 다음의 꽃들이 핀다. 무슨 꽃들인지 대부분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그렇다고 그 꽃들이 이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꽃은 활짝도 핀다. 아마 문 열고 내려가면 새삼스럽게 눈이 아파올 정도의 꽃들이 피어 있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심히 지나쳤던 한 철의 것들. 꿈 같은 색들.


 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요즘 꿈결에서 헤어나는 일이 이상하게도 어려웠다. 잠이 모자란 것 같았다.


 빛을 가로지른 한 가운데 서서 균형을 잡고 느리게 욕실로 걸었다. 미지근한 물을 얼굴에 끼얹어 세수를 하고 물이 튀어 젖은 머리카락을 젖은 손으로 대충 그러모아 묶었다. 그제서야 눈꺼풀이 한층 가벼워져 깜빡이는 감각이 옅어졌다. 오늘은 딱히 정해진 할 일이 없었다. 요즘 대부분 그랬지만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한순간 늦잠이나 더 잘 걸, 부질 없는 후회가 바람처럼 스쳤다. 그렇지만 이미 방 밖으로 달아난 잠이 되돌아올 리 없다. 누이는 어질러진 침대 한가운데에 걸터 앉아 막 눈을 떴을 때와 똑같이 벽에 그려진 빛의 수평선이나 보고 있었다. 조금 높아진 것 같기도 했다.


 아, 그 꽃들, 지기 전에 보러 가야 하는 걸까.


 꿈결에서 다 헤어난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달아난 줄 알았던 잠이 슬금슬금 볕을 타고 다시 기어들어왔거나. 어딘가 묘하게 색조가 맞지 않는 스펙트럼을 떠올리곤 그 위에 꽃잎 모양을 대강 덧씌워 보았다. 밖으로 나가서 구경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예쁜가, 아닌가. 잘 모르겠다. 꽃의 예쁨을 좋아하던 게 맞았나 싶을 정도로 알 수 없었다. 다시 나가서 그 보드라운 것들을 눈앞에 대고 들여다보면 기억이 날까? 이것도, 잘 모르겠다.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오늘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한다고 해도 무어라 할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 것도 아무도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꿈결에 조금 더 푹 잠겨 있기로 했다. 이제까지 빛 속에서 푹 젖어 있던 것처럼.

 언젠가는 여름 볕에 말릴 날이 오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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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케이트 교수는 언제나 모두의 화젯거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늙고 지적인 교수 그 자체보다는 그 주위를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이 그랬다. 그의 출신 학교, 주요 요직을 차지한 후배들과 제자들, 그의 손으로 직접 구성된 능력자 집단 더 호라이즌,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아이들―그 중에서도 요즘 단연 화제인 것은 그의 손자손녀인 맥고윈 남매였다. 총명하고도 다정한 소년인 헨리와, 낯을 가리지만 오빠를 닮아 명랑한 소녀 캐럴. 헨리의 죽음은 그를 아는 누구에게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교수가 헨리 맥고윈의 죽음에 관한 조사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문건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 "저에게는 크나큰 슬픔과 비탄을 안겨준 사건이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조사는 즉시 중단되었고, 헨리의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다. 그렇지만 헨리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를 바람처럼 떠돌고 떠돌아 작은 폭풍이 되어 있었다.

 캐럴라인 맥고윈은 어느새 손끝을 맴돌기 시작한 작은 눈보라를 바닥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소금 같은 얼음 결정이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에 작은 분수처럼 하얗게 흩어졌다. 캐럴이 만든 눈보라를 시도때도 없이 받아낸 마루바닥은 벌써 몇 번째 새로 공사해 교체된 참이었다. 하녀들은 새 마루를 쓸고 닦으며 아가씨가 능력을 아직도 조절하지 못한다며 수군거렸다. 그날 밤에 캐럴은 온 바닥을 눈으로 새하얗게 덮어버렸다. 아침에 잠을 깨우러 온 하녀는 어안이 벙벙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겨울 같지? 잠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캐럴이 묻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사장을 부르겠다며 얼른 걸음을 돌렸다. 결국은 저녁 때 할아버지에게서 한 소리 들어야 했다. "적당히 하거라." 무얼 적당히 하라는 건지 캐럴은 진심으로 알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모르겠지만 캐럴은 헨리의 죽음에 관한 조사 중단을 요청하는 문건을 가지고 있었다. 원본은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서재를 뒤지고 다닐 적에 발견한 것이었는데, 그는 꽤나 고심했는지 문서를 여러 장 고쳐 썼었다. 캐럴은 하나하나 다 읽어 보았다. 하지만 조금 더 공적으로 고친 단어들을 제외하면 내용은 다들 비슷했다. 심지어 뉴스로 대신 들었던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캐럴은 그 중 가장 마지막에 쓴 걸로 보이는 것을 몰래 가지고 왔다. 어차피 다시 들춰질 일이 없는 문서들이었다. 제 방 침대에 드러누운 캐럴은 종이를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크나큰 슬픔과 비탄, 캐럴은 이 대목에서 목 울대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제 개인적인 감정이, 이어서 가슴께가 내려앉았다. 슬픔은 맞는 단어였다. 사람이 죽는 건 슬픈 일이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눈앞에서 당연히 숨을 쉬고 더해서 말을 하고 웃기까지 하던 사람이 다음 날 시신으로 나타났다면 그게 생판 모르는 사람이었더라도 슬퍼하는게 당연했다. 캐럴이 인정할 수 없는 건 비탄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비탄하지 않았다. 적어도 캐럴 앞에선 그랬다.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자신의 손자 이름을 되뇌어보지도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며 손을 떨지도 않았다. 손자의 죽음을 비통해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그는 분명 슬프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건 조문객과 같은 표정이었다. 캐럴이 헨리의 관에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땅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때 그는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올려 캐럴의 눈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아무도 감히 혼자 남은 여동생이 죽은 오빠와 단 둘이 있는 순간을 방해하지 못하던 때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행동했고, 헨리의 죽음도 예외는 아니었다.

 헨리가 죽은 이후로 자연스럽게 헨리에게 쏠려 있던 사람들의 이목은 남은 여동생에게로 옮아 갔다. 그래서 헨리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심이 사그라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캐럴이 더 호라이즌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픈 눈빛을 하고 웃어주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더 호라이즌에 들어간 사람이 '헨리의 여동생'이 아닌 '캐럴 맥고윈'이라는 사실을 구분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재뉴어리마저도 처음엔 그랬다. ……아니, 아무도는 아니었다. 멜빈이 있었으니까. 그만이 캐럴이 호라이즌에 들어갔을 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건 캐럴 자체에게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지극히 멜빈 리히터다운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그 무관심과는 별개로, 캐럴은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이 너무 어린 애 같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캐럴은 한 번도 멜빈의 앞에서 굳이 싫은 티를 낸 적은 없었다. 멜빈도 캐럴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아닌지 전혀 관심 없었겠지만.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헨리의 장례식에서 캐럴 바로 다음에 이름이 불린 인물이었다. 그는 헨리의 생전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마음에…….

 "아가씨, 또 바닥이……."

 한참이나 노크하던 하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침대 밑에는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캐럴은 한숨을 쉬는 하녀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섰다. 문을 넘는 순간 바깥의 후텁지근한 공기가 얼굴에 훅 끼쳤다.


 멜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관 별개로 캐럴은 그의 작업실을 제법 드나들었다. 리첼 스트라우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재뉴어리 정도는 되었다. 물건을 고쳐달라는 이유도, 호라이즌 관련 일 때문도 아니었다. 멜빈은 캐럴이 말없이 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가끔 이유를 물어보긴 했지만 특별히 대답을 안 해도 상관 없었다. 가만히 구석에 앉아 있으면 때로는 하도 작동해서 달아오른 기계를 식혀달라며 느릿하게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기계가 차가운 금속의 온도를 되찾을 동안 캐럴은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어두운 작업실 내부를 열심히 눈을 굴려 살펴보았다. 두 개의 제피,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기계, 죄다 열려 있는 공구 상자, 구석에 처박힌 책장과 서랍, 종이들이 잔뜩 널려있는 책상 위, 그 중 뜯지 않은 전보……

 캐럴이 작업실에 도착할 때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눈을 찔러서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캐럴은 한 번도 노크를 하거나 벨을 울린 적이 없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낡고 무거운 쇠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자마자 기름 냄새와 잉크 냄새와 금속 냄새가 합쳐져 코를 찔렀다. 노을진 바깥에 비하면 밤이 몇 시간은 더 빨리 와버린 듯 어두운 작업실에 눈이 적응할 때까지 현관에 서 있다가 이내 발을 떼었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공구와, 미친듯이 휘갈겨 써내간 수식들로 꽉 찬 종이를 밟지 않고 가는 것쯤은 이제 당연했다. 캐럴은 작업실의 한가운데에 도달해서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멜빈은 대개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있거나 기계를 만지고 있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멜빈."

 낯간지럽게 이름을 불러보아도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멜빈!"

 목소리를 더 크게 해봐도 사방은 조용했다. 그 멜빈 리히터가 작업실에 없다면, 어딜 갔으려나. 캐럴은 다시 사방을 살펴 보았다. 멜빈을 찾는 게 아닌, 이곳에 없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때 책상 쪽에서 무언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노란색 제피가 캐럴의 음성을 인식하고 부팅된 모양이었다. 네모난 화면 안에 빨간색 사선 불이 두 개 들어온다. 캐럴은 그걸 도저히 눈이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제피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캐럴 앞으로 다가왔다. 균열지고 딱딱한 음성이 제피에게서 흘러나왔다.

 "음성을 인식합니다, 캐럴라인 맥고윈."
 "멜빈은 어디 있어?"

 캐럴은 이 기계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에 아직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검색합니다, 멜빈 리히터― 제피 L 사용자 확인. 반경 15m 내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외출한 거야?"
 "검색합니다, 외출―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외출이 아니라면 어디 갔어?"
 "제피 L 내에서 외출과 유사한 단어가 포함된 영상을 찾았습니다. 작성자, 헨리 맥고윈."

 멜빈 리히터는 헨리 맥고윈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캐럴은 멜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사실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캐럴은 아까와 비슷하게 목 울대와 가슴께가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기계의 음성이 조합해낸 헨리의 이름은 다른 음성과 마찬가지로 균열이 져 있었다. 사실 헨리가 멜빈에게도 무언가 남기고 갔을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헨리는 캐럴에게 자주 편지나 쪽지를 남겼고, 자그마한 선물도 여러 번 전해주곤 했다. 캐럴은 멜빈의 책상 위에 쌓여 있던 뜯지 않은 전보들을 떠올렸다. 손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재생… 해줘."
 "영상을 재생합니다."

 캐럴의 생각은 거기까지밖에 미치지 못했었다. 글씨나, 어디서 산 것, 억지나 우연으로라도 찍었을 지 모르는 사진. 캐럴은 헨리가 그걸 넘어서는 무언가를 남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게 헨리가 캐럴에게 남기고 간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편지들, 캐럴이 떠올라 산 작은 목걸이, 어깨를 감싸고 웃으며 찍은 사진. 영상은 편지도 아니었고, 선물도 아니었고, 사진도 아니었다. 영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제피가 영상 로딩을 마치자 붉은 빛이 사라졌다. 캐럴은 덜덜 떨며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동안 캐럴의 눈이 거울처럼 비추어졌다. 그리고 일순간,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다. 헨리의 눈.

 "이거 되는 건가? 되는 거 맞지, 제피? 좋아, 멜빈. ……어, 인사해야 되나? 아까도 했는데. 안녕, 멜빈. 아하하, 제피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니. 그런데 도저히 너한테 얘기하는 것 같진 않네. 그냥 제피한테 전해달라고 해야겠어. 어디서부터 얘기하지? 그래, 제피. 내가 계속 여행했던 건 알지? 곧 5년 후의 미래로 갈 거야. 아돌프 박사는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되는 집단을 찾아내고, 라파엘이라는 사람에게 그 집단이 어떻게 권력을 가지게 되는지 전하라고 하셨어. 나머지 일은 그 사람이 알아서 할 거라고……. 난 이 일을 끝으로 시간 여행하는 일을 그만 둘 거야. 신경 안 쓰는 척 하지만 네 주인이 날 은근 걱정하거든. 다음에 보자, 옐로우 키드."

 영상은 그대로 멈추었다. 헨리는 웃고 있었다. 사진에서의 웃음도 아니었고, 기억 속의 웃음도 아니었다. 그건 진짜 헨리였다. 그 순간에 존재했던, 그 순간에 살아 움직이던 헨리.
 캐럴은 도저히 영상을 다시 재생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시 재생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 멈춘 웃음, 그 다음의 영상을 보고 싶었다. 그 다음의 헨리가 보고 싶었다. 다음에 보자. 그 다음이 보고 싶었다. 헨리의 다음. 재생을 끝마치고도 캐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제피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화면의 헨리가 사라지고 붉은 불빛이 다시 들어온다. 그게 끝이었다. 다음이 아닌, 그대로의 끝. 헨리는 캐럴에게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습관처럼 떠난 여행이었고, 습관처럼 돌아올 줄 알았었다. 다음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캐럴은 제가 썼던 일기를 떠올렸다. "오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약속을 어겼다." 헨리가 약속을 어긴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내려앉았던 목 울대가 완전히 부숴진 느낌이었다. 점점 체온은 뜨거워졌지만 반대로 손끝은 아플 정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캐럴은 울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울지 않는다는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약속을 못 지키는 건 지난 여름이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캐럴은 틈이 날 때마다 헨리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리려고 했다. 캐럴, 하고 부를 때의 목소리, 억양, 표정, 입의 모양을 떠올리려고 애쓴 적이 몇천 번은 되었다. 기억은 캐럴의 머릿속을 바람처럼 떠돌고 떠돌다가 폭풍이 되지 못한 채로 흩어져 버렸다. 캐럴은 헨리가 하는 인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웃는 소리도 떠올릴 수 없었다. 캐럴은 헨리의 목소리를 떠올릴 수 없었고, 캐럴은 헨리가 웃을 때 눈이 어떻게 접히는지, 입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말할 때 시선을 어떻게 굴리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캐럴은 그랬다. 

 "……언제 왔어?"

 하지만 멜빈 리히터는 다르다.
 그는 헨리가 생전에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지, 어떻게 웃었는지 언제고 다시 되돌려볼 수 있다. 멜빈 리히터는 헨리 맥고윈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헨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멜빈이었다. 가장 가까운, 캐럴은 그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헨리가 캐럴에게 해주지 않은 말들, 멜빈은 언제든지 다시 듣고 볼 수 있다. 헨리가 유일하게 멜빈과 캐럴에게 똑같이 남긴 것이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거짓말.
 제피가 멜빈에게 먼저 날아갔다. 캐럴은 제피를 따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멜빈은 평소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당황하거나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하다못해 캐럴이 우는 걸 보고 걱정하는 기색도 당연히 없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똑바로 캐럴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었다. 마치 장례식 때의 할아버지처럼, 캐럴과 헨리가 마지막으로 단 둘이 있을 때 감히 끼어들던 그 시선처럼. 그러나 너무나 명백하게, 이번에 끼어든 것은 캐럴이었다. 그게 캐럴이 가장 견딜 수 없는 사실이었다. 들켰다는 얼굴을 한 것은 멜빈이 아니었다. 캐럴이었다.

 캐럴은 멜빈이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작업실을 나섰다. 멜빈은 가만히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옆엔 제피가 있었다. 헨리의 영상을 수십 수천 수만 번은 다시 재생할 수 있는 제피.

 





멜빈 시점의 틈새에서 이어지는 걸로 쓴 글
17살의 캐럴 상상하면서 썼지만 나이는 딱히 상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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