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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그러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당신의 연인이에요. 누이.

 그러고 보니까, 내가 쥰에게 긴 말을 건넨지 꽤 됐더라구요. 습관처럼 말하는 보고 싶어요 좋아해요 그런 말 말고 ―물론 전부 빠짐없이 진심이지만― 정제하고 닦아내서 예쁘게 내어 놓은 유리알 같은 말 말이에요. 사실 가끔씩 생각해봤는데…… 어려웠어요. 얼굴 보면서, 그냥 말로 마주하면서 하는 말들은 그렇게도 가볍게 퐁 하고 비눗방울처럼 잘만 터져나오는데, 그저 어디 조용한 곳에 앉아서 쥰에 대해 생각하면서 단어를 고르려니 이상하게도 내 언어들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어요. 표현이 부족한게 아니라 표현할 말들이 전부 도망치기라도 한듯이.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기억보다는 상상처럼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을 정확히 짚어내려고 할 때마다 내 눈 앞에 섬광이 스쳐갔어요. 아주 밝아서 눈을 감아버리게 만드는 그런 빛이.

 그래서 지금은, 어떤 곡을 들으며 조금 느리게 말을 구성해가고 있는데. 이 곡은 아마 지금 쥰도 듣고 있겠죠? 난 이제 어떤 음색이든 피아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쥰을 떠올려요. 쥰이 연주하는 소리가 아니더라도 자꾸 돌아보게 돼요. 분명히 서로 다른데도 당신이 묻어나와요. 피아노 소리 말고도, 나와 딱 10cm 차이나는 키나, 민트향 가득한 아이스크림, 길거리에서 훅 끼쳐오는 담배 냄새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전부. ……나열하려면 끝도 없겠네요.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 섬광과 비슷해요.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번쩍하고는 사라져서 내가 계속 돌아보게 만들어요. 마치 그 자리에 쥰이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난 그럴 때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고만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요.
 세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겐 그저 보통 날이었던 오늘 날짜도 그래요.

 서론이 너무 길었나, 그 정도는 이해해줄래요? 내겐 찬찬히 설명할 말들이 필요했어요. 쥰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스스로 왜 그런 섬광을 자꾸만 보게 되는지, 그 빛들을 차곡차곡 접어서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쥰은 이해할 수 있겠어요? ……난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유독 반짝거리는 오늘 하루를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쥰이 태어난 19번째 날이 이렇게나 빛난다고.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그렇게 사방에서 반짝거리며 곁을 스쳐가는데 쥰 얼굴은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걸까요? 스스럼없이 눈빛을 맞추고 손을 잡고 향기를 맡는 그 시간들이 때로는 너무 새삼스럽고 신기해요. 끝나지 않을 것처럼 뜨겁던 여름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이제 겨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 오는 동안 우리가 서로의 일상이 되었다는게. 난 기적을 믿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이 다음, 그 다음, 끝이 없을 그 끝까지 같이 섬광을 마주하고 싶어요. ―비록 당신에게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무 눈부시면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럴 때면 이상할 정도로 또렷한 쥰을 마주보면서. 스치는 빛이 아닌 그 자리에 있다고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어요. 혹여 내가 빛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생일 축하해요, 이 여섯 글자로 대신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아쉬워서. 좀 길었나요? 그래도 선물이라고 생각해줘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이 훨씬 많았나봐요. 유리알 같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만 줄일게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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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쥰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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